
농협중앙회 정경. (사진=농협중앙회)
[공익탐사뉴스=김민중 기자] 2026년 3월 10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앞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분노 섞인 외침으로 가득 찼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그리고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주요 단체들은 결의대회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9일 정부 합동 특별감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촉발되었는데, 이는 강호동 회장의 개인적 비리 의혹을 넘어 농협 내부의 뿌리 깊은 보복성 감사와 조직적 부패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과 핵심 간부진은 그야말로 ‘비리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규모의 부정행위에 연루되어 있다. 선거 과정에서 표를 매수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금품을 수수한 정황은 물론, 청탁금지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특히 농민들을 위해 쓰여야 할 재단 사업비와 포상금 등 공적 자금 수억 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유화한 혐의는 농심(農心)을 저버린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노동계와 농민 단체는 이성희 전 회장의 셀프 연임을 막고 당선된 강 회장이 오히려 더 심각한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즉각적인 사퇴만이 무너진 농협의 도덕성을 회복할 유일한 길임을 선언했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보복성 감사와 임단협 개악의 실상
농협중앙회의 내부 경영 방식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중앙회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는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2024년 12월 대법원 판례 변경으로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는 작년 9월 직원 급여 규정을 일방적으로 고쳐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는 등 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꼼수 경영’을 자행했다. 이는 사실상의 임금 삭감이행이자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평가받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열사 및 지역 농·축협에 대한 중앙회의 갑질 행태다. 순정축협 사례에서 드러나듯, 사측의 명백한 노동관계법 위반 책임을 오히려 현장 직원들에게 전가하며 중징계를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는 이를 ‘물타기 감사’이자 노동자 길들이기식 압박으로 규정했다. 노동자들은 농협중앙회가 자신들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하청업체 직원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 조직적인 임단협 투쟁을 통해 생활임금을 쟁취하고 왜곡된 징계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권력 독점과 소외된 현장 농민들의 절규
농협중앙회의 비대해진 권력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농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농민 단체들은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농민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거대 자본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성토한다.
특히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은 여성 농민들이 농사와 가사 돌봄을 병행하며 헌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회 중심의 권력 구조 속에서 이들의 노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받고 소외되는 현실을 강력히 비판했다.
농민들은 중앙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보다는 회장 1인과 관료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진행 중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개혁추진단 논의가 오는 5월 마무리될 예정인 가운데, 농민 단체들은 이번만큼은 형식적인 제도 개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중앙회가 사업을 독점하고 지역 농·축협을 통제하는 수직적 구조를 타파하고, 지역 농업인이 주인으로서 돈을 벌고 쓸 수 있는 구조로의 ‘해체 수준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주도하는 개혁만이 농협을 다시 농민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사태 수습을 넘어선 전면적인 인적·구조적 쇄신 요구의 확산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농협중앙회는 뒤늦게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의 특별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지적된 사항에 대해 제도 개선과 관리 체계 보완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조직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회장의 사퇴나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어,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많다.
노동계와 농민 단체는 농협중앙회의 발표가 사법 처리를 피하거나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들은 단순한 시스템 보완으로는 현재의 부패 고리를 끊어낼 수 없으며, 강호동 회장의 사퇴를 포함한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농협법 개정을 통한 구조적 수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농협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앙회 권력을 분산하고 현장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