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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문의 날,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할 권리’와 언론의 본령을 묻는다

by 공익탐사뉴스

오늘은 제70회 ‘신문의 날’이다. 1896년 4월 7일, 이 땅에 ‘독립신문’이 첫선을 보인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모든 백성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문을 함께 발행했다.

권력을 감시하고 민초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노라 선언한 지 1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재필 박사와 독립협회 선각자들이 주창했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백성의 알 권리를 충족하겠다”는 서슬 퍼런 창간 정신은 오늘날 우리 언론계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가.

독립신문. (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뮤지엄)

매년 이맘때면 언론사마다 ‘언론 자유’와 ‘독자 권익’을 화려한 활자로 새기며 기념식을 치르지만, 올해 우리가 마주한 지역 언론의 현실은 성찰 없이는 마주하기 힘들 만큼 엄중하다. 기념사 속에 박제된 언론 자유는 화려한 수사로 가득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작동하는 언론의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본지 취재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은 오늘날 지역 언론이 처한 위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특정 종교 재단과 행정기관 간의 행정적 특혜 의혹을 질문하려던 본지 기자의 질문을 가로막은 것은 공권력이나 외부의 압력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료 기자였다.

“그 질문은 하지 말라”며 고성을 지르고 취재 활동에 개입하는 모습은 감시자여야 할 언론이 스스로 질문의 벽을 세운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이는 단순한 현장의 소동을 넘어, 언론이 언론의 입을 제약하는 ‘언론에 의한 취재권 침해’나 다름없다.

이것이 어찌 해당 기자 개인의 우발적 일탈뿐이겠는가. 이는 고사(枯死) 직전인 지역 언론의 구조적 모순과 뒤틀린 생태계가 낳은 뼈아픈 자화상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대다수 지역 언론은 지자체의 행정 광고비와 외부 수익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 속에서 건강한 비판 기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자체의 치적을 전달하는 홍보성 보도가 지면을 채우고, 날카로운 감시와 견제 대신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기대하는 관행이 지역 언론의 그림자로 자리 잡았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기자의 시선이 예산 편성권자의 의중을 살피느라 흐려진다면, 언론은 더 이상 시민의 대변인이라 불릴 수 없다.

이러한 ‘침묵의 카르텔’은 지역 사회의 자정 작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특히 거대 자본이나 특정 단체가 행정과 결탁했다는 의혹이 있을 때, 지역 언론이 보여주는 소극적인 태도는 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다.

지역민의 삶에 직결되는 특혜 의혹이나 세금 낭비와 같은 사안에 대해 던져야 할 마땅한 질문이 현장에서 동료 기자의 손에 의해 차단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정보 투명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기자가 질문을 주저하고 오히려 질문하는 자를 억압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감시받지 않는 자본은 공동체의 공익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이 듣고 싶어 하는 찬사를 받아 적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권력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지점을 짚어내고, 곤혹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데 있다. 동료의 정당한 질문권을 존중하지 않는 언론은 공기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우리는 편벽되지 아니하고 무슨 권세가 있든지 잘못하는 사람은 우리가 말할 터이요”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1세기 전 선배 언론인들이 지켰던 그 고결한 기개와 독립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과제다.

신문의 날을 맞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국민의 편인가, 권력의 편인가? 우리는 진실을 캐내는 도구인가, 아니면 부조리를 덮는 가림막인가?

본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역 언론의 윤리를 바로 세우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떠한 압력이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지역민이 궁금해하는 진실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특정 재단이든 행정 권력이든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견지할 것을 약속드린다.

언론의 자유는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로 지켜내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펜촉을 가다듬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은 오직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것’이며, 그 질문의 끝에 공동체의 정의가 있음을 잊지 않겠다. 질문이 멈춘 사회에는 어둠만이 남기에, 우리는 오늘 더 치열하게 묻고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신문의 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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